요즘은 너무 치아망이 여행에 관한 포스팅을 많이 한 거 같다. 책을 읽지를 않으니 예전처럼 책에 대한 포스팅을 할 수 없음이 당연한 일인데, 블로그=서평이라는 나의 내면에 박힌 관습이 '너 이러면 안 된다!'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행복하려고 하는 일들 중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그거를 또 잘하지 못해서 죄책감을 가지는 내가 가끔은 너무 싫지만, 이것도 또 나이다.
죄책감을 덜려고 또 예전에 썼던 책 중에 서평의 흔적이 남아 있는 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김영하 작가님의 '보다'라는 산문집에 관한 서평이다. 이때만 해도 김영하 작가님은 김연수 작가님과는 다르게 산문집을 내는 소설가는 아니라서 신선한 출판 중에 하나였다. 나도 '이제 나 글 좀 쓰구나' 착각하며 살 때라서 약간 책에 대한 평가가 후하지 못했다.
그때는 김영하 작가님에 대한 질투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나와 비교한 것은 아니고, 내가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김연수 작가님과의 관계에서의 질투였다. 내가 응원하는,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김연수 작가님과 김영하 작가님은 라이벌 관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둘 다 2010년대 전후로 내 기준으로 가장 영향력 있고, 유명한 소설가였고, 그 어렵다는 '소설가가 책 판 돈으로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에 해당하는 작가님들이었다.
그런데 김연수 작가님은 적극적인 홍보나 셀프 마케팅에 탁월하지는 않았다. 가끔 북 콘서트나, 강연에 가면 이런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반대로 김영하 작가님은 본인의 지식을 서스름 없이 전달하는 법을 너무나 잘 알고 '셀프 마케팅'까지 잘하는 분이셨다. 매체와 강연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알리는 것에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존재였다. 그런 김영하 작가님이 김연수 작가님보다 더 인정받는 것이 그때는 싫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감히 나는 쓸 수 도 없는 글을 쓰는 분에게 약간은 박한 평가를 내렸던 글을 쓴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래도 실제로 뭔가 산문에서 까지 현학적이다는 느낌이 들어 좀 친근감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여하튼 이런 서평이라도 남아 있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참 열심히 읽고 쓰고 하던 때이다. 그것만으로 행복했었던 시간이었고, 그것을 멈추지 않으면 무언가 이와 관련된 일을 하지 않을까라는 작은 희망도 품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럴 때는 다 지나가고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아래부터는 원본 글이다. 원본 링크는 알라딘 서재로 연결하겠다.
https://blog.aladin.co.kr/799296155/7176834
미국에서의 짧은 유학생활을 막 시작한때였다. 같은 기숙사의 룸메이트들은 피부색이 다른 것만으로도 낯선데 말까지 통하지 않아 어색하기 그지없었고, 주변지리도 모르고 차도 없으니 어디 밖으로 나돌아 다니기도 언감생심인 때였다. 그래서 그 시절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말’은 ‘수업이 있는 주중’ 보다 못했다. 그런 어색한 주말이 오면 나는 침대에 누워 다운로드한 영화가 나오는 노트북의 모니터만 멀뚱멀뚱 쳐다봤었다.
그때 본 수많은 영화 중 하나이지만, 아주 특별하기도 한 단 하나의 영화가 <비포 선라이즈>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행에 대한 기대나 환상보단 계획 짜고 짐 싸는 것에 대한 귀찮음이나 짜증 남이 더 컸던 나였다. 그런 나에게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여행이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그러니까 여행은 단체로 우르르 가서 내 의지에 상관없는 곳에 내려 정해진 시간 내로 사진 찍고 다시 차에 올라타는 그런 것이 아님을 알려줬다. 신체뿐 아니라 자신감까지 혈기왕성한 때라 제시 왈라스 보다 내가 괜찮지는 안더라도 못할 것도 없다 생각했고, 충분히 줄리 델피와 같은 여자를 여행지에서 만나기만 하면 언제든 꾈 수 있다고 생각 아닌 착각을 했었다. 그런 착각이 만들어낸 자신감과 부푼 기대감을 안고, 정말 열심히 여행을 다녔다. 그런 여행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비포 선라이즈와 같은 만남’에 대한 기대감은 점점 감소했지만, 그래도 그런 기대감에 대한 ‘미련의 끈’을 한 번도 놓은 적은 없었다. 그 ‘미련의 끈’을 잡고 몇 번의 여행을 더 행한 뒤였을까, 이제 ‘비포 선라이즈와 같은 만남’이 없더라도(사실 아직도 나의 ‘미련의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여행의 참 맛을 알아 버려서 여행 없이는 내 삶이 유지되지 않고, 내 인생을 논할 수도 없다. 내가 살면서 본 영화는 다 기억나지도 않고 몇 편인지 셀 수도 없다. 그러나 내 인생에 영향을 주거나 혹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 영화들은 많지 않다. 꼭 영화가 아니라도, 영화처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로부터 누군가는 영향이나 영감을 받을 수도 혹은 받지 않을 수도 있다.
http://aladin.kr/p/6b3J8
김영하 작가님의 산문집 ‘보다’는 작가 개인적으로 영감이나 생각할 거리를 줬던 영화, 사회현상, 사람 등에 대해 작가의 생각을 풀어놓은 책이다. 보이는 혹은 관찰한 대상으로부터 작가의 생각을 소설가적 픽션을 동원하지 않고 (당연히 이건 산문집이니까) 있는 그대로 서술해 나간다. 그 서술은 예전에 경험과 연결되기도 하고, ‘또 다른 시각적 대상’들과 연관을 지어가며 에피소드 하나하나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작가의 말에서 고백했듯 ‘가드를 내리고 상대를 맞이하는 권투선수 같은 기분’같이 머쓱하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작가는 덤덤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작가의 방대한 지식, 똑똑한 비유 그리고 이야기의 큰 판을 아주 치밀히 짜는 ‘소설적 가드’가 사라져서 그런지 작가와 독자가 한 층 더 친해진 느낌이다.
그러나 다른 작가의 산문집보다는 그 가까워짐의 거리가 아직은 좀 멀다. 그러니까, 보통의 산문집을 읽을 때에는 동네 사는 형이랑 포장마차에서 서슴없이 만나 소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기분이라면, 김영하 작가의 산문집을 읽을 때에는 대학생 과외선생님과 학생이 처음 만나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기분이랄까, 그런 거리감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김영하 작가의 가드는 내려가다 목쯤에서 멈춘 듯 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뭐 김영하 작가의 산문을 자주 접하지 못한 나의 탓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번뜩 들긴 한다.)
그래도 작가가 말한(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예측 불가능한 김영하 작가’가 되는 데에는 이 산문집이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리고 이 예측 불가능했던 산문집 하나로 인해 훗날 ‘얻어지는 부산물’도 분명 있지 싶다. 대학생 김연수가 정릉의 자취방에서 아무 생각 없이 끼적였던 시로 ‘등단 시인 김연수’가 되고 ‘소설에 자작시를 쓰는 소설가’가 되었던 것처럼, 이 산문집에 쓰인 문장 하나, 단상 하나가 ‘우리가 언제까지나 사랑할 김영하 소설의 밑거름’이 될 테니까, 그러면 진짜 작가의 말처럼 이 산문집은 ‘생각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점’이 된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올 산문집에서는 좀 더 가드를 내리셔도 될 듯하다. 머쓱하고 어색한 정도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가드를 목보다 아래로 좀 더 내려야만 느낄 수 있는 불안함, 상대로부터 일격을 당했을 때의 억울함 아픔까지도 더 진솔하게 보여준다면 독자도 작가도 서로에게 조금 더 마음의 문을 열고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산문집이 앞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다행이다, 아직 권투선수의 가드가 목까지만 내려와서. 그래서 앞으로의 산문집인 ‘읽다’, ‘말하다’가 더 기다려진다.
원문은 http://ddawoori.tistory.com/184 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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