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쿠, 리하쿠
지훈은 몇 번이나 그 사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2011년의 봄밤, 활짝 핀 벚꽃나무 아래에서, 리나와 나란히 앉아, 깊은 강을 바라보며, 그 사케, 리하쿠를 마셨다. 몽롱하고 서늘한 맛, 이라고 지금까지도 기억할 수 있는 건 그 병이 불투명한 푸른 빞이었기 때문에.
"대학 다닐 때는 지하철보다 차 타고 다니는 게 더 좋았어요. 차창 밖에는 늘 풍경이 있으니까, 그중 최고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면서 바로보는 밤의 한강이었죠. 신입생 시절이라면, 밤의 한강이 보이던 차장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신입생 시절의 최고의 풍경을 마주하고 앉아서 리하쿠를 마시며 리나가 말했다. 지훈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런 리나의 왼쪽 얼굴을 바라봤다. 윤중로는 꽃놀이를 온 사람들로 북적였으나, 이 세상에 둘만 남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둘만 남게 되자, 나머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일제히, 근사해졌다.
마치 거기 벚꽃들의 풍경처럼.
김연수 작가 단편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中 사랑의 단상 2014 '2. 2011년 봄의 맛, 봄의 이백 李白 중
롤랑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이라는 책에서 영감을 얻어 파스텔뮤직에서 해마다 프로젝트 앨범을 발매 한적이 있다.
그 당시 그 음악앨범에 참여하는 가수들은 대부분 인디밴드로 그 때 나의 취향과 너무 잘 맞아 그 앨범의 출시 기다렸고, 나오는 곡마다 그 시절 나의 감성을 자극했다.
http://aladin.kr/p/Nbe2v
사랑의 단상 2014년 버전은 유독 기대가 갔던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좋아하는 '짙은, 홍재목‘ 등의 뮤지션들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작사의 모티브가 될만한 사연을 모집하였던 것으로 기억이난다. (나도 참여한 것 같으나 채택은 되지 못 하였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이 앨범을 애정했던 이유는,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알콜 섭취로 인한 기억력 감퇴를 실감하고 있다.) 곡을 한곡씩 순차적으로 발매했고, 그에 맞춰 김연수 작가가 곡에 어울리는 짧은 이야기를 써 함께 공개했었다. 그 이야기들을 얼마나 기다렸었는지.
처음에는 하나, 하나가 다 다른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결국은 한사람의 이야기로 연결된다는 것 도 너무 놀라웠고, 어떤 음악에 영감을 얻어 개별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고, 결국은 그것을 하나로 엮어내는 능력에 감탄했다. 기억의 조작일 수도 있겠으나, 언젠가 이 글을 소설집에 실겠다던 김연수 작가의 말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런 감탄이 나에게 있었다는 사실 조차 잊고 사는 나에게, 우연히 펼쳐든 책에서 '사랑의 단상 2014'를 맞이 했을때, 그 반가움이란.
2014년.
그 때의 나는 아직 소설가의 꿈을 완전히 접진 않았었다. 소설 학교를 다니고, 소설을 쓰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조금은 편한 직장에 재입사하길 희망했으며, 꾸준히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한 감상, 나의 생각을 애를 쓰면 정리하던 삶을 이어나고 있었다.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내 삶을 마주한다면, 얼마나 생경할까.
2014년에 쓴 김연수 작가의 소설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껄 알면서도, 애쓰고 애쓰던 그때의 내가 있었다.
그가 말한 몽롱하고 서늘한 리하쿠, 무슨 맛일까
홍재목의 '당신이 그대가'를 틀어놓고 한강을 바라보면 한잔 해봐야겠다.
https://youtu.be/Sm_d1iv6R6I?si=izM-yuyqyeSY1d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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