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잘 쓴 글이다. 출처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이다.
[2013년 문학동네 연말결산 리뷰대회]에 출품한 서평으로 문학동네에서 그 해 발행한 책 3권 이상을 하나의 서평으로 엮어서 글을 써야하는, 아마추어 서평작 치고는 까다로운 편의 대회였다.
심사도 예심은 문학동네 편집팀에서, 본심은 소설가 윤성희 선성님께서 직접 해주셨다. 윤성희 선생님의 대표작은 장편소설 [구경꾼들]이 있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 중 하나이다.
윤성희 선생님의 심사평 중 '슬픔에 대한 성찰이 아름다웠다.'(출처:https://cafe.naver.com/mhdn/77396)는 말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심사평과 수상은 내가 별볼일 없는 글을 쓰는 것에 점점 지쳐갈때, 그래도 나라는 별이 은하계에서 지구와 아주 멀리떨어져 있고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별일 뿐, 빛나지 않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이 대회에서 2등을 했다. 공식적으로 가장 인정받은 글 중 하나다. 이 수상을 계기로 몇년동안 일을 하면서도 소설가의 꿈을 놓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창비 소설학교에 다니고, 글을 쓰는 작가 지망생들과 주말에 만나 서로의 글을 피드백하는 스터디를 하기도 했다. 낭만의 시기였다. 행복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 글을 보면 그때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너무 좋다가도, 결국은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에 씁쓸함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뭐 여튼, 의미있는 일이 었다, 문학동네라는 곳에 내이름을 올렸다는 자체가 쉬운일은 아니니까.
아래부터는 원본의 글이다. 내블로그는 사라졌기 때문에 출처는 문학동네 카페링크로 하겠다(https://cafe.naver.com/mhdn/76928)
나이를 먹을수록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슬픔’이 많아진다. 누군가의 부재나, 되돌릴 수 없는 시절 등이 그에 해당하겠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때론 그 슬픔을 다 잊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저 그 슬픔을 밀어낼 방법이 없으니, 내면에서 공존을 허락할 뿐이다. 공기나 물이 항상 곁에 있어 그 존재에 대한 감각을 잠시 잊는 것처럼, 슬픔도 공존이 시작되면 그 존재를 잠시 있었다가, 어떤 상황이나 물건이 매개체가 되어 문득 생각나 우리를 울컥하게 만든다.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슬픔’이란 말 그대로 ‘품고 살아가야만’한다. 그 슬픔을 내면으로부터 밀어내려면, 병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듯, 슬픔의 근원을 찾아 퇴치해야한다. 그러자면 부재된 존재가 터미네이터처럼 ‘내 인생의 후속편’에라도 돌아온다는 ‘I will be back!!’의 확신을 주거나 타임머신을 타고 슬픔의 근원이 발생한 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혹 먼 미래에는 이러한 일들이 가능할지 모르나, 현재에는 공상소설에나 있을 법 한 이야기이다. 결국, 나이를 먹을수록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슬픔’은 많아지고 또 없어지지도 않는다.
김연수 작가의 단편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라는 책은 그런 ‘누군가의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슬픔’에 대해 노래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총 11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11가지의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슬픔’에 대해 말한다. 11가지의 다양한 슬픔이 김연수라는 작가를 만나 ‘애잔한 11가지 단편’이 되었고, 그 단편들은 너에게도 또 우리에게도 그런 슬픔이 있지 않는가 며 독자들에게 되묻고 있다.
그런 되물음에 내가 대답한 11가지 중 단 한가지의 작품, 바로 ‘쭈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이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백미’로 뽑고 싶고, 감정이입이 가장 잘 되었던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다 수해 전 떠난 아버지가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졌고, ‘노티나는 어머니’가 졸업식에 오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주인공처럼 ‘손톱에 기름때가 낀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내 유년시절이 떠올랐고, 남아계신 어머니께라도 잘해야지 하며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드렸던 기억이 난다.
이 단편은 주인공의 큰 누나가 이 집안과는 연고는커녕 아무 관련도 없는 안산의 아무개 터널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황당한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누나의 주장에 못 이겨 남매는 늦은 밤 안산의 터널로 향하게 되고, 그러는 중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큰 누나와 함께 지냈던 몇 개월, 어머니 삶의 마무리에 대해 듣게 된다. 그 몇 개월의 시간동안, 어머니는 평생 ‘아까워 입지도 버리지도 못한 옷들’을 정리하기 전 하루에 한 벌씩 입고 난 뒤 정리하기로 큰 누나와 약속한다. 그 ‘버리지 못한 옷들’은 ‘단순한 옷’을 넘어 ‘잊고 살았던 큰누나와 어머니의 인생'을 담고 있었던 매개체였다. 그러한 옷들을 하나하나 입으며, 그 옷에 담긴 시절과 추억 속으로 어머니와 큰누나는 시간여행을 했다. 그 시간 여행 속에서 지나간 것들에 대한 슬픔, 아쉬움, 이루지 못 한 어머니의 꿈 그리고 주인공이 잊고 있었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 들이 교차한다. 그러한 감정 선의 교차 속에서 이 소설은 ‘네가 누구든, 얼마나 대단하든’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떠나간 부모님에 대한 슬픔’ 아주 잘 이야기했다. 이 하나의 단편이 나에게도 매개체가 되어 평상시 잊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슬픔’을 깨워 주었고, 그날 밤 유난히 ‘오뎅국물에 소주한잔’이 그리웠던 기억이 난다.
김연수가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서 인간이 삶이라는 바다를 향해하면서 경험적으로 획득할 수밖에 없는 ‘품고 살아가야만 하는 슬픔’을 이야기했다면,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태생적인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출신부터가 불우함을 타고난 고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고아들의 삐뚤어진 삶을 작가가 실제 경험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디테일하게 묘사한 이 책은 앞선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이야기들과는 달리, 슬픔과 공존하는 방법을 알지도 익히지도 못한 어린 아이들이 그러한 극복법을 모른 체 태생적인 슬픔을 따라 점점 암울하고 삐뚤어진 세계로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태생적 슬픔’의 처방은 ‘사회적 해결책’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은 없다. 다만, 극복하는 법을 몰라 슬픔에 빠져 살 뿐이다. 따라서 고아와 같은 ‘사회적 약자’가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들처럼 ‘타락의 세계’로 빠지지 않도록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물론 방법론적인 고민이 있어야겠지만, 그게 ‘성장을 통한 낙수효과’던 ‘분배를 통한 복지실현’이던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삶 전체가 어둡고 불우해진다면, 그건 그들에게도 우리사회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뿐이다. 이런 아이들이 앞으로의 삶을 개척하고, 슬픔을 극복하며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지금처럼 보여주기 식의 정책 실행이 아닌,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며 이 책을 읽는 동안 생각했다. 그렇게 사회적인 도움으로 누군가는 슬픔과 공존하고, 슬픔을 극복하는 법을 익힌다면 개인과 이 사회의 성장과 건전성에 일정부분 이바지할 수 있다.
앞에서 두 책이 말해 주듯이, 인간은 슬픔을 경험적이건 태생적이건 가질 수밖에 없다. 그 슬픔을 품던 혹은 그 슬픔에 좌절하건 여튼 슬픔은 나에게로 온다. ‘인생의 어두운 면’을 담당하고 있는 슬픔은 결국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인생의 동반자’이다. 그렇다면 ‘인생의 어두운 면‘을 우린 어떠한 자세로 대처해야할까?
김연수의 ‘원더보이’는 ‘인생의 어두운 면’에 대해 은유적으로 정의 내려준다.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우주가 더 많은 더 먼 곳의 별들까지 다 품기 위해서 우주는 더 팽창하고 성장하듯 우리의 인생도 우주가 팽창하듯 어두운 면이 팽창하면서 결국에 더 멀고 닿기 어려운 곳의 별도 만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은 더 많고 다양한 ‘별빛’들로 차게 될 것이고, 그 별빛이 유난히 밝아 보이는 까닭은 우리 ‘인생의 어두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슬픔이라는 ‘인생의 어둠’이 있기에 ‘인생이라는 우주’의 ‘추억, 행복, 따뜻함과 같은 별’이 더 값지고 소중하다고 이 책은 나에게 말해주었다.
올해 이 세권의 소설책이 나의 슬픔을 일깨워 울게 만들었고, 우리의 인생에 슬픔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고, 그런 깨달음을 통해 나를 한 번 더 성장하게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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